사람들의 의견을 그리는 일 — Deliberation Field
캔버스 위에서 수백 개의 점이 움직인다. 모였다가 흩어지고, 어떤 자리에서는 소용돌이처럼 감긴다. 점 하나하나는 가상 주민의 마음속 의견의 위치이다. 하나의 계획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수백의 가상 주민들의 의견은 설득되거나 반발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고수한다.
미술적 표현의 힘을 새로 발견한 것은 아니다. 설계로 훈련받은 사람에게 그리는 일은 원래 말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연구자가 된 뒤로 도시 데이터를 다룬 결과는 주로 논문과 특허로 내놓았다. 정확하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그릇이 없다. 다만 거기에 담기지 않는 것이 있다. 분석이 끝난 뒤에도 남는 통찰과 인상 같은 것들이다.
작년, KAIST Urban AI Institute와 MIT Senseable City Lab의 합동 전시로 서울시가 연 AI Seoul 행사에서, 나는 우리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벽면과 영상 전시작품을 만들어 코엑스에서 전시한 적이 있다. 그때 확인한 것이 있다. 시민들은 도시 데이터 자체보다 그것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과정과 방법, 그리고 그 해석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논문이 닿지 않는 자리에 닿는 채널이 하나 더 있는 셈이었다. 그 뒤로 데이터를 회화적으로 다루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느껴 processing과 p5.js를 공부해 왔다.
이번 작품 Deliberation Field는 실제 관찰에서 출발했다. 농촌 지역의 주민 공청회를 지켜본 적이 있다. 고령화된 지역에서 장기 공공계획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소통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후 가상의 주민들이 계획안을 논의하는 시뮬레이션을 연구로 다루면서, 에이전트들의 의견이 움직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그 움직임이 이 작품의 재료다.
다만 작품은 연구가 아니다. 시뮬레이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미술적 표현을 위해 많은 것을 고쳤다. 데이터를 정확하게 옮기는 일은 일부러 내려놓고, 사회자와 발언자와 방청객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의견이 옮겨 다니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점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움직임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동조하고, 반발하고, 때로 소용돌이치는 상호작용이 떠오른다면, 작품은 제 몫을 한 것이다.
베를린에서의 전시라 기대가 더 크다. 독일은 도시계획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끌어내고 수렴하는 일에 오랜 공을 들여온 곳이다. 이 작품이 그곳의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더 많은 이야기는 전시 이튿날 열리는 Artist Talk에서 이어가려 한다.
Deliberation Field는 베를린 전시 《Da:zwischen》(2026.7.25–30, PG Galerie)에서 볼 수 있다. 작품의 임베딩 공간은 웹에서 직접 탐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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